샘 오취리를 기필코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사람들에게(기사 제목)

샘 오취리를 기필코 끌어내리고 말겠다는 사람들에게(기사 제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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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 오취리에게 가하는 폭력, 하차와 사퇴 만능주의

사실, 이런 논란이 2020년 경제적으로든 코로나 대처로 본 사회적 성숙도로든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우리나라에서 벌어졌다는 게 놀랍다. 다민족, 인종의 다양성 문제가 아직은 첨예하지 않은 우리사회에서 인종 차별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부족할 수는 있지만 선진 사회를 살아가는 시민의 일원으로서 이 즉각적 불쾌심의 뿌리는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이 논란으로 인해 우리는 얼굴에 검은 칠을 하고 흑인을 따라하는(분장하는) 블랙 페이스는 아시아인에게 눈 찢는 행위를 금기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수 십 년 전부터 글로벌스탠다드로 자리 잡은 인종 차별 행위라는 것을 다시금 알게 됐다. 여기까지는 가치판단의 영역이 아니라 배움의 영역이다.

그런데 우리 일각에서는 이 배움을 소화하길 거부하고 있다. 그의 지적은 충분히 사회적 학습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사안이었지만 이 이야기를 꺼낸 사람이 가나 출신의 흑인 방송인이기 때문일까. 메시지를 두고, 메신저를 향한 돌팔매가 더욱 치명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국에서 경제적 이윤을 얻는 외국인을 넘어, 흑인의 이중성, 부도덕한 인간으로 점점 그에게로 향하는 돌의 크기는 커지고 있다.

수년간 인터넷 밈이 되길 원하며 기획해 공공연하게 퍼블릭되는 의정부 고교 졸업사진을 퍼온 것을 일반인에 대한 저격이라고 하고, 정중한 표현의 영어 원문은 의도적으로 곡해해 분노의 씨앗으로 전파한다. 수년 전 방송 장면 조각, 지나간 SNS 글들을 가져와 지금 맥락에 이어붙이면서 인성을 파탄내고, 애초 우리 사회 구성원이 아니었다는 선을 긋는다. 심지어 우리 덕에 잘 살던 사람이 배신했다고까지 한다. 원 기사를 보면 전혀 문제될 것 없는 BBC와의 인터뷰도 우리나라를 욕보이기 위한 활동으로 둔갑한다.

문화적 몰이해로 접근하는 신선한(?) 시각도 있다. 코스프레라는 문화의 속성도 이해 못 하는 무지몽매한 자가 부끄럽게도 지적질을 했다는 비난이다. 허나 코스프레는 무슨 마패 같은 게 아니다. 이 세계에도 원본에 최대한 충실한 것과는 전혀 다른 판단 기준이 존재한다. 미국에서 KKK단을, 유럽에서 나치를, 우리나라에서 위안부를 코스프레한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대중문화든, 표현이든 사회문화적 맥락과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 피부에 와 닿지 않았을 뿐 인종차별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번 패러디 논란은 몰랐다면 알아 가면 될 일이다.

그런데 여기서 불순한 의도를 찾는다. 패러디한 고교생들에게 인종차별의 의도가 없음은 누구나 믿는다. 샘 오취리 또한 그 부분을 지적한 게 아니다. 그런데 웃기고 싶은 고교생들의 순수한 의도는 표면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왜 개인적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전무한 오취리의 발언에는 '해시태그'를 들먹이며 숨기는 의도가 있다고 믿는 것일까? 무슨 이유로 자신 삶의 터전인 한국을 전 세계에 업신여기고 싶어 한다는 것일까.

잃을 것을 걸고 말하는 사람의 발언은 무게와 진정성이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와 다른 피부, 그리고 심지어 다른 피부의 그가 우리에게 충고, 직언, 지적을 했다는 데서 사고가 멈추고 불쾌함을 들여다본다. 이 감정이 국가주의적 발상인지, 인종주의적 발상인지, 이 둘이 만나서 만든 화학작용인지 우리는 냉정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전 MBC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봉원은 88올림픽을 앞두고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시커먼스'를 높은 곳에서 폐지시켰다고 밝혔다. 그 방법이 전혀 민주적이지 않아서 그렇지 서슬 퍼런 그 시절부터 블랙 페이스의 위험성을 알고 있었단 뜻이다. 2017년 홍현희가 SBS <웃찾사>에서 흑인 분장을 하고 나와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때 샘 해밍턴은 훨씬 직접적이고 과격한 저격을 했다. 이에 동료 개그맨인 황현희가 샘 해밍턴을 저격했지만 오히려 별다른 동의를 얻지 못했다. 그런데 흑인인 샘 오취리가 2020년 우리나라 사회를 대상으로 정중한 지적을 하자 분위기는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 과연 차이는 무엇일까.

그러니 이제 그만할 때가 됐다. 무조건적인 사과와 퇴출 요구가 갖는 카타르시스는 잠시일 뿐, 전혀 우리 삶과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블랙 페이스에 대한 지적을 샘 오취리라는 방송인에게 낙인찍으면 해결되는 일일까? 오늘날 미국에서는 현재 코로나보다 더 뜨거운 사회 이슈가 바로 흑인 인종 차별이다. 샘 오취리에 대한 비난이 여전히 계속되는 것을 보면서 인종 차별 뉴스가 이제 더 이상 외신 소식만은 아닌 것 같다는 또 다른 불편함이 느껴진다.

배움의 영역을 거부해서 얻을 수 있는 건 없다. '너가 감히 잘 되는지 두고 보자'는 심보는 "서 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이야기 하고 싶어요" 라는 말에 대한 건설적인 화답이 결코 아니다. 그의 지적이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악이 클까, 배움을 거부하고 인정을 피하는 분노와 비난이 더 클까. 굳이 우리 스스로 앞뒤좌우 덮어두고 목소리 높이는 '사퇴하세욧!' 짤의 주인공이 될 필요가 없다.

김교석 칼럼니스트 [email protected]

https://entertain.v.daum.net/v/20200904133005884?d=y


....................할 말이 없습니다..저거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는 것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기회가 되면 한 번 같이 이야기 하고 싶어요 "

이건 뭔 소리일까요? 샘 오취리가 이랬다고 주장했다고?

그래서 저게 정중한 지적이라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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